숙원 작가 인터뷰

"서각,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예술이 되길"

2024년 5월 10일

숙원 작가

▲ 선생님의 고향과 현재 거주지는 어디인가요?

1954년 5월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가난한 집안 환경 때문에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죠. 지금은 경기 남양주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정착 중입니다.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서 작업하면 영감도 더 잘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 젊은 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정말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업을 겨우 마치고 일찍 사회에 나섰어요. 처음에는 공장에서 일도 하고, 나중에는 작은 무역회사를 차려서 운영했습니다. 그것도 여의치 않아서 식당도 해보고, 정말 닥치는 대로 일했죠. 1970~80년대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던 시기였지만, 개인적으로는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급했던 시절이었습니다.

▲ 서각과는 언제 처음 인연을 맺으셨나요?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5년 정도 됐습니다. 사업하면서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동네 작은 절에서 우연히 서각 작품을 보게 됐어요. 나무에 새겨진 글씨와 그림이 참 신기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취미로 시작했는데, 손으로 직접 만드는 일이 마음을 안정시켜주더군요. 나무 특유의 향기와 질감, 그리고 조각칼로 나무를 깎는 순간의 집중력이 저를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 서각을 배우는 과정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혼자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웠습니다. 책을 보고 독학하기도 했죠. 나중에 지역의 서각 선생님을 찾아가서 제대로 배웠어요. 3년 정도 열심히 배웠는데,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있어서인지 빨리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밤에 작업에 몰두하면 낮에 받은 스트레스가 다 사라지더라고요. 조각칼로 나무를 파는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고민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 서각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서각은 죽은 나무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입니다. 평범한 나무판이 조각칼 몇 번에 의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죠.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어요. 정신집중이 필요한 작업이라 잡념이 사라지고,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또한 나무마다 각기 다른 성질과 무늬를 가지고 있어서, 같은 도안이라도 각각 다른 느낌의 작품이 탄생하는 것도 매력 중 하나입니다.

▲ 현재는 어떤 방식으로 서각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저는 직접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기존의 좋은 예술작품들을 서각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주로 합니다. 명화나 유명한 서예 작품, 시구 등을 나무에 새기는 2차 생산 작업이죠. 이렇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서각을 쉽게 접할 수 있거든요. 최근에는 불교 문화와 관련된 작품들을 많이 제작하고 있는데, 특히 달마도와 불경 구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 주문제작도 가능한가요?

네, 물론입니다. 고객이 원하는 글귀나 그림을 서각으로 새겨드립니다. 가훈이나 상호, 기념품 등 다양한 주문을 받아서 작업하고 있어요. 작은 작품은 일주일에 2~3개 정도 완성할 수 있고, 큰 작품은 수개월이 걸리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결혼 기념이나 집들이 선물로 의미 있는 글귀를 새긴 작품을 찾으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특히 젊은 세대들도 점점 서각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매우 기쁩니다.

▲ 어떤 종류의 나무를 주로 사용하시나요?

작품의 성격과 용도에 따라 다양한 나무를 사용합니다. 소나무는 부드러워서 초보자들이 작업하기 좋고, 느티나무는 단단하고 무늬가 아름다워 고급 작품에 적합합니다. 그 외에도 참죽나무, 단풍나무, 흑단, 월넛 등 다양한 목재를 활용하죠. 나무마다 색감과 질감이 달라서, 작품의 내용과 어울리는 나무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한 과정입니다.

▲ 작업 시간은 언제 주로 하시나요?

낮에는 다른 일들이 있어서 주로 밤에 작업합니다. 조용한 밤에 혼자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이 가장 좋아요. 때로는 너무 집중하다 보면 밤을 새우기도 하죠. 특히 겨울에는 따뜻한 방에서 조용히 작업하는 시간이 무척 행복합니다. 나무를 파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시간이 저에게는 최고의 명상이자 휴식이 됩니다.

▲ 서각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하시는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서각이 어렵고 접근하기 힘든 예술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생활예술이 됐으면 좋겠어요. 특히 요즘같이 스트레스가 많은 시대에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는 좋은 취미가 될 수 있거든요. 2024년부터는 소규모 서각 교실을 열어 관심 있는 분들에게 기술을 나누고자 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직접 손으로 만드는 아날로그적 경험이 더욱 값진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홍보나 마케팅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사실 저는 앞에 나서는 성격이 아니에요. 그래서 아들과 며느리가 제 기술을 상품화하는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온라인 판매도 하고, SNS를 통해 작품을 소개하기도 하고요. 젊은 세대들이 이런 일에 훨씬 능숙하더라고요. 덕분에 최근에는 해외에서도 문의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전통 예술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서각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 서각 입문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기본 도구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고, 3개월 정도만 배우면 간단한 작품은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금전적인 부담도 크지 않고요. 다만 작업할 때는 정성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작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간단한 문양이나 작은 글자부터 시작해보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각은 결과물보다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이 더 크니까요.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서각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예술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서각 교실도 열어서 배우고 싶어하는 분들을 직접 가르쳐보고 싶어요. 제가 경험한 서각의 즐거움과 평안함을 다른 분들도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또한 저만의 작품집을 출간하는 것도 작은 꿈 중 하나입니다. 25년간의 작업을 정리하는 의미로 내년에는 소규모 전시회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서각은 단순히 나무에 글씨나 그림을 새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고 정신을 수양하는 예술입니다. 바쁜 일상에 지친 분들께 작은 위안이 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작품을 통해 많은 분들이 서각의 아름다움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오래도록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이 제 작품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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